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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화. 일곱 자픽션이논픽션(주역) 2026. 10. 3. 09:17
그가 들어와 앉더니 종이 한 장을 탁자에 놓고 손바닥으로 한 번 눌러 폈다. 그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. 의자는 탁자에서 한 뼘쯤 떨어져 있었다. 당기지 않았다. 컵을 밀어 놨더니 고개를 저었다. "저는 괜찮습니다." 그대로 이 분쯤 갔다. 아래층에서 세탁기가 돌고 있었다. "뭘 물으러 오셨습니까." "목요일에 회의가 있는데요. 거기서 말을 할까요, 아니면 그만둘까요." 서른일곱이라고 했다. 식품회사에서 품질관리를 9 년 했다. 셔츠 가슴 주머니에 볼펜이 두 개 꽂혀 있었다. 하나는 검정이고 하나는 빨강이었다. "이월에도 회의가 있었습니다. 원료 거래처를 바꾸는 안건이었고요." "반대하셨고요." "네." "어떻게 하셨습니까." "자료를 열여섯 장 만들어서 갔어요. 칠 분 말했습니다." "그러고요." 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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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화. 저녁에 뭐픽션이논픽션(주역) 2026. 10. 1. 10:30
문이 열리자마자 그가 먼저 인사를 했다. "안녕하세요. 4시에 예약한 사람이요." 그가 방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의자를 조금 돌려 앉았다. 창을 등지지 않는 쪽이었다. "저거 유리 바로 옆이라 저녁에 식어요." 창틀 화분을 한 뼘쯤 안으로 들여놓고 다시 앉았다. 전에 마른 잎을 떼어낸 자리 옆으로 촉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. "쉰일곱이고요. 예식장에 있어요. 진행 쪽이요. 19년 됐어요." "진행이요." "식 시작부터 끝까지 돌리는 거예요. 토요일엔 열한 건 해요. 20분 간격이고요." 그가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탁자에 놨다. 분 단위로 칸이 나뉘어 있었다. "양가 어머님들 붙으셔도 제가 5분이면 정리해요. 그건 자신 있어요." 말하는 동안 몸이 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. 내가 입을 떼면 끝나기 전에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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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화. 쓸 게 없어요픽션이논픽션(주역) 2026. 10. 1. 09:29
계단에서 두 사람 소리가 났다."윤 선생님, 셔츠 두 장이요. 밑에서 이 학생이 여기 맞냐고 물어서 같이 올라왔어요."세탁소 사장이 옷걸이를 문 옆에 걸고 내려갔다. 비가 와서 비닐 위에 물이 맺혀 있었다.그가 들어와서 앉았다. 앉고 나서도 카메라 가방 끈을 어깨에서 내리지 않았다."따뜻한 건 없습니까.""없습니다. 물만 있어요."그가 한 잔을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놨다."스물여섯이고요. 촬영 스튜디오에 삼 년째 있어요. 제품 쪽이요. 화장품하고 그릇 많이 찍는데, 뭐 제가 찍는다기보다는 세팅하고 정리하는 거죠.""삼 년 내내요.""작년부터는 찍어요. 근데 그것도 실장님이 뒤에서 다 보고 다시 찍으니까, 제가 찍었다고 하기는 좀 그렇고요." "오늘은 뭘 물으러 오셨습니까.""월요일 촬영이요. 이번 주도 미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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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화. 뭘 더 늘려요픽션이논픽션(주역) 2026. 9. 30. 12:17
문 여는 소리가 났을 때 시계는 3 시 56 분이었다."네 시 맞죠.""맞습니다. 4 분 남았어요.""그럼 시작해도 되겠네요."그가 앉으면서 탁자에 종이를 한 장 놓았다. 놓고 나서 네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밀어 탁자 선에 맞췄다.아침에 창틀 화분의 마른 잎 두 장을 떼어냈다. 떼고 나니 줄기 아래쪽이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."번역 십이 년 했어요. 산업 쪽이요. 설명서하고 규격서요. 마흔하나고요.""프리랜서시고요.""네. 거래처는 세 군데인데 한 군데가 7 할이에요. 십이 년 내내 그 한 군데였고요.""이 종이가 그겁니까.""새 단가표요. 지난주에 왔어요."종이를 반 뼘 밀어 줬다. 표에 번역이라는 줄이 없었다. 항목이 검수 일, 검수 이로 나뉘어 있었고 단가는 장당 5200 원이었다."원래 얼마였습니까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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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화. 작게 내면 안 틀려요픽션이논픽션(주역) 2026. 9. 27. 14:06
전화를 끊고 나니 그가 문 안쪽에 서 있었다."노크했는데요.""못 들었습니다.""아, 네."의자에 앉으면서 몸을 오른쪽으로 조금 틀었다. 탁자하고 비스듬해졌는데 고쳐 앉지 않았다. 보온병은 아침에 채워 뒀다. 그는 컵을 받아서 두 손으로 감싸기만 했다."9 년 동안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어요. 구 년 됐어요. 시민합창단인데 문화회관 3 층에서 해요. 화요일 저녁 일곱 시 반부터 두 시간이요. 9 년 동안 네 번 빠졌어요.""네 번이요.""처남 상 때 두 번이고, 두 번은 태풍이요. 그건 회관이 문을 닫아서 빠진 거라 제 사정은 아니고요."예순둘이라고 했다. 버스 회사에서 정비를 32 년 하고 3 년 전에 나왔다."12월 6일에 정기공연이 있는데요. 그거 끝나고 그만둘까 하고요.""왜요.""자리가 없어져서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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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화 「미안하다고 하잖아요」픽션이논픽션(주역) 2026. 9. 26. 14:57
발소리가 계단 중간까지 올라왔다가 도로 내려갔다. 한참 있다가 다시 올라왔다. 문 앞에서 좀 서 있었다. 섬유유연제 냄새가 같이 들어왔다. "여기 맞죠." "맞습니다." 의자를 조금 당겨 앉았다. 앉고 나서는 자세를 거의 안 바꿨다. 손에 A4 한 장을 반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. 창틀 쪽을 한 번 봤다. "저거 잎 끝이 말랐는데요." "압니다." "물을 주면 그렇게 되기도 해요. 밑에 고여서." 말이 느렸다. 한 마디 하고 한 박자 쉬었다. "오래 걸려요?" "뽑는 데 이십 분쯤 갑니다." 그가 휴대폰을 꺼내 뭘 눌렀다. 타이머였다. 화면을 엎지 않고 탁자 위에 그대로 뒀다. "모임이 있어요. 넷이요. 여자 넷이요.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근로 같이 하던 애들." "지금은요." "저는 계속 도서관에 있어요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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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4화. 이십육일에픽션이논픽션(주역) 2026. 9. 24. 12:08
천수송(天水訟) 구이 → 천지비(天地否) 유리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. 다들 그냥 연다. "예약을 안 했는데요." 작업복이었다. 앉기 전에 바지 무릎을 두 번 털었는데 먼지는 안 보였다. 다섯 시 반이었다. 창이 서향이라 그 시간에는 앉은 사람 얼굴 반이 역광이다. 보온병을 기울였더니 아무것도 안 나왔다. "물이 없네요." "됐습니다. 차에 있어요." 그러고는 가지러 가지 않았다.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가 갈라져 있었다. 반창고가 아니라 접착제를 발라 굳혀 놨고, 말하는 동안 그 자리를 계속 문질렀다. "보일러 합니다. 이십이 년 했어요." "네." 한참 말이 없다가 휴대폰을 꺼내 탁자에 놓고 내 쪽으로 밀었다. 이체 목록이었다. 같은 날짜, 같은 금액이 아래로 이어졌다. 25일, 500,00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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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화. 코받침이 노래서픽션이논픽션(주역) 2026. 9. 23. 16:53
예약은 두 사람이었다. 온 건 한 사람이다. "반쪽만 왔어요." 그러고 웃었다. "언니가 아침에 문자를 보냈더라고요. 너 혼자 얘기해 보라고." 창틀에 잎이 두 장 나란히 나 있다. 한 장이 작다. 그가 안경집을 탁자에 올려놓았다. 쓰고 있는 안경은 따로 있었다. "이거 언니 거예요." "바꿔 쓰세요?" "도수가 거의 같아요. 쌍둥이라서. 아, 저 쌍둥이예요. 언니가 3 분 먼저 나왔고요." "오늘 들고 나온 게 어느 쪽이에요." "그걸 모르겠어요." 또 웃었다. 방과후 교실을 열두 해 하고 있다고 했다. 언니는 다른 일을 한다. 같은 동네에 산다. 걸어서 7 분. "수영을 같이 다녔어요. 아홉 해요. 월수금 저녁 일곱 시." "다녔어요, 라고 하셨네요." "석 달 전에 언니가 머리를 잘랐어요. 여기까지..